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오늘 가져온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입니다. 요즘들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성실한 글쓰기와 마라톤, 소박한 생활방식, 그리고 번역투 같은 문체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약 2주 전, 하루키의 에세이집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을 독서했습니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그가 처음 소설을 쓰게 되었을 때를 회상합니다. 29살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야구선수가 안타를 치는 것을 본 후,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집에 틀어박혀서 몇 달간 글을 썼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을 완성합니다. 이 소설은 1979년 군조 신인문학상 수상작이 되고 하루키는 그 해 작가로 데뷔합니다.
이 책은,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라고 합니다. 하루키는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그의 다른 소설에도 꾸준히 등장시켰으며, 자신만의 특유의 문체를 이 책에서부터 선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어떤 내용일까요?
제 나름대로 줄거리와 결말을 정리해 봤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1) 그는 번역체의 문장을 사용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저술할 때, 영어로 글을 썼습니다. 그 후 그는 일본어로 그가 지은 영어 소설을 번역했습니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쓴 이유는 기성 문체를 탈피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졌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만의 소설을 쓰려 하지만 그가 기존에 접해온 작가들의 문체를 자연스레 따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버릇을 타파하기 위해 일부러 영어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나중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그가 영어로 소설을 처음 적은 이유는, 타자기로 글을 쓰고 싶어서일 뿐이라고 밝히기는 했습니다.)
2) 1979년(데뷔 연도) 즈음의 하루키는 꽤나 불안정한 시기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와세다대학을 입학했지만, 학교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영화 각본가를 꿈꾸며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레코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1971년에 학생 신분으로 결혼을 하고, 74년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재즈카페를 개업했습니다. 1975년에야 그는 7년간 재학한 와세다대학을 졸업합니다.
하루키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하지만 그는 1978년의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며 ‘깨달음’을 얻었고, 그날부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후기를 대신하여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 주의!! 내용이 상당히 난해합니다!
제가 여태 써왔던 책 리뷰 중 가장 어려울 듯합니다…
1. 세 명의 등장인물
이 책의 메인 등장인물 세 명만을 손꼽아보자면
‘나’와 ‘쥐’, ‘그녀’가 있습니다.
1) 가난한 대학생인 나는 침묵하는 인물입니다. 어릴 적부터 자기 의사를 많이 표현하지 않아 부모님이 나를 정신건강의학과에 보냈을 정도입니다.

성인이 된 나는 더 이상 과묵한 소년은 아니지만, 여전히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런 나를 보며 누군가는 ‘그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모든 걸 달관한 거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라고 말합니다.
2) 쥐는 부잣집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부정직한 사업으로 돈을 많이 모았고, 그는 이 사실을 혐오합니다. 쥐는 소설을 쓰는데 거기에는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쥐는 자신의 소설에 ‘섹스’와 ‘사람이 죽는’ 장면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3)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여자 한 명이 나오는데 그녀는 손가락이 네 개이고, 이혼녀입니다.
나는 그녀와 어느 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녀는 나를 밀어내는 듯 끌어당겼습니다. 그녀와 나는 자주 만나게 됩니다.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해변의 도시에 여행을 갑니다. 그 해 8월 8일부터 8월 26일 사이 나는 해변의 도시에서 ‘쥐’, 그리고 ‘그녀’를 만납니다.
18일간의 기간 동안 내가 ‘쥐’와 ‘그녀’와 맺는 관계들을 적어 놓은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책의 전체 내용입니다. 책에 나오는 조각조각의 내용들을 엮어, 인물 한 명 한 명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2. ‘나’에 대하여(헤매는 인물)

| 나는 전에 인간의 존재 이유를 테마로 한 짧은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결국 소설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동안 줄곧 인간의 ‘레종 데트르’ 에 대해서 생각했고, 덕분에 기묘한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수치로 바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버릇이었다. 약 여덟 달 동안 나는 그런 충동에 시달렸다. 전철에 타자마자 승객 수를 헤아리고, 계단 수를 전부 세고, 시간만 나면 맥박 수를 셌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1969년 8월 15일부터 이듬해 4월 3일 사이에 나는 강의에 358번 출석했고, 섹스를 54번 했고, 담배를 6,921개비 피운 것으로 되어 있다. |
나는 계속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인물입니다. 한때 나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했고, 그 후에는 완벽한 문장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나는 모든 사물을 수치화해 보기도 하고, 다양한 문학가들의 글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방황하던 중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대학생 때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작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참뜻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 의 일이지만, 당시에도 최소한 그 말은 내게 일종의 위안이 되기는 했다. 완벽한 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완벽’한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도 문학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완전무결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어떠한 ‘시늉’을 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나는 글에 대한 많은 것을 데릭 하트필드에게서 배웠다. 거의 전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장은 읽기 힘들고, 스토리는 엉망이고, 테마는 치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트필드는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뛰어난 작가 중 하나였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와 같은 동시대의 작가와 견주어도 하트필드의 그 전투적인 자세는 결코 뒤지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
완벽함을 꿈꾸지 않는 내가 롤 모델로 삼은 작가는 데릭 하트필드입니다. (하트필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속에서 창조해 낸 가상의 인물입니다.) 그는 읽기 힘든 문장을 쓰고, 엉망인 스토리를 쓰며, 테마 역시 치졸합니다.
** 개인적 해석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속의 캐릭터 ‘나’는 하루키의 자아를 형상화한 듯합니다. 완벽한 글을 쓰고 싶었고, 삶의 존재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끝까지 이를 찾지 못한 자기 자신을요.
그렇지만 하루키는(혹은 나는) 완벽한 진리 하나를 깨닫습니다.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진리였습니다.
3. ‘쥐’에 대하여(삶의 모순성)
가난한 대학생인 나와 다르게, 쥐는 부유한 인물입니다. 침묵을 지키는 나와 달리 쥐는 자신의 생각을 말로도, 글로도 많이 표현합니다. 그는 섹스와 죽음이 없는 소설을 씁니다.

| “이런 건 어떨까? 내가 타고 있던 배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침몰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튜브를 잡고 별을 보면서 혼자 밤바다를 표류하는 거지. 조용하고 아름다운 밤. 그런데 맞은편에서 나처럼 튜브를 잡은 젊은 여자가 헤엄쳐 오는 거야.” |
예컨대 쥐가 쓰고 싶은 소설은 위의 문장들과 같은 것입니다. 침몰한 배에서 홀로 튜브를 붙잡고 표류하게 된 한 남성이, 맞은편에서 튜브를 잡고 헤엄치는 젊은 여자를 만납니다. 그들은 배에서 떨어져 나온 맥주를 마시며 바다 한가운데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쥐의 소설들은 아름다우나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현실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섹스’와 ‘죽음’을 빼고 글을 쓰니 그런 것이겠죠.
쥐는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 사람 같으면서도, 결국 그가 생각하기에 아름답지 못한 부분은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순적인 사람이죠.
쥐는 자신이 부자이면서도 부자를 혐오하였고, 말을 많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 있는 고민은 나에게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4. ‘여자’에 대하여 (상실과 우연)
나는 우연히 여자를 술집에서 만나게 되고, 간헐적인 만남을 이어갑니다. 여자는 손가락이 네 개뿐이었는데 어릴 적 한 손가락이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자는 나를 만나던 도중 여행을 간다며 잠깐 동안 사라졌습니다. 다시 나타난 그녀는, 나와 대화를 나누며 사실 자신이 여행이 아닌 낙태 수술을 하러 갔다고 고백합니다.

| “이상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그래?””상대방 남자 말이야. 까맣게 잊어버렸어.얼굴도 기억해 낼 수 없어.” |
여자는 낙태 수술과 함께 그녀를 임신시킨 당사자의 얼굴도 잊어버렸습니다. 손가락, 아이… 그녀는 끊임없이 뭔가를 상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는 나에게, 자신에게 계속해서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결국 울어버리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 “계속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났어.머리 위에선 언제나 나쁜 바람이 불고 있어.”“바람의 방향도 때가 되면 바뀔 거야.”“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언젠가는.” |
** 개인적 해석
‘바람’의 방향도 때가 되면 바뀔 거야,라는 문장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나오는 ‘바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바람’은 곧 인생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바람’의 노래는 인생의 굴곡 과정을 의미했습니다.

바람 소리를 노랫소리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슝-‘, ‘휭-‘ 하는 소리만 들을 수 있겠죠. 바람의 소리는 뭔가 어설프고, 제대로 들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결코 노래처럼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하루키는 이러한 보통의 씁쓸한 인생들을 다 ‘노래’처럼 인식했나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생의 조각 이야기들을 책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통해 적어놓은 듯해 보입니다.
5.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결말
책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뭔가 심심한 느낌이 들듯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결말도 뭔가 심심합니다.

여름방학이 끝났고, 나는 원래 살고 있던 곳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나이를 먹습니다. 어느새 나는 결혼하여 도쿄에서 아내와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꿈이란 결국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런, 적당히 평범한 인생을 삽니다.
나는 쥐와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그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었으며, 그만의 이상한 원칙을 아직도 지키고 있었습니다.
손가락이 아홉 개인 여자와는 여름방학 이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나는 여자를 만났던 해의 겨울에 다시 해변가로 찾아가서 그녀를 찾았는데, 그녀는 이미 이사를 가고 자취를 감춘 후였습니다. 그녀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었던 장소에 가며, 여자를 회상했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굴곡이 너무 없어
오히려 난해했던 이야기들
보통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인물의 인생사 굴곡이 10이라면 이 책의 굴곡은 1 정도인 것 같습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여름 방학을 맞은 내가 친구인 ‘쥐’와, 그리고 처음 만난 여성과 수다를 떤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 내용만을 담아 놓았기에 이 책은 오히려 해석하기 난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문장도, 인간의 생애도 모두 불완전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며, ‘인생이란 바람은 이러한 노랫소리를 내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듯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에 관심이 있으신 분
- 난해한 소설을 해석해 보고 싶으신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