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요약 줄거리 독후감

덕혜옹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권비영 작가

오늘 제가 가져온 책은 <덕혜옹주>입니다. 고종의 딸이자, 비운의 마지막 왕녀로 알려진 실존 인물 ‘덕혜옹주’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죠.

덕혜옹주의 일생에 대한 인터넷 글을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소설로는 처음 본 듯합니다. (제목 정도는 원래 알고 있었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역사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책을 찾던 중 우연히 집어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예상했던 만큼이나 꽤 슬픕니다.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덕혜옹주는 생활도, 결혼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13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야 했고, 일본 귀족인 소 다케유키 백작과 강제로 혼인하게 됩니다. 그녀의 유일한 딸인 정혜는 덕혜옹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기까지 합니다.

평생을 불행했던 그녀의 덕혜옹주의 일생을 담은 책 내용, 들려드리겠습니다.


작가 소개

권비영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신 권비영 작가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중학교를 다녔을 때에는 선생님께 자작 소설로 칭찬을 받았으며, 곧 소설가가 될 거라고 믿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냉혹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신춘문예에도 몇 번 떨어지시고, 등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도전한 끝에 1995년에 신라문학대상으로 소설 작가로 데뷔하십니다.

2009년 작가님께서 출간하신 소설 <덕혜옹주>는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으며, 러시아 외 5개 국어로 번역되고, 영화화되기까지 합니다. 이후 작가님께서는 <은주>, <몽화>, <엄니>, <하란사> 등 다양한 작품을 출간하십니다.


목차 소개

프롤로그 두 여인

1부 그곳에 이름 없는 황녀가 살고 있었다

유령의 시간 /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가 / 괴이한 소문 / 비밀을 함께 나눈 이 /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 심연 / 떠도는 자들 / 인연 / 그리운 사람들 / 이름의 대가

2부 한겨울에 피는 꽃들

조선 유학생 / 떨어지는 꽃잎처럼 / 또 다른 죽음 / 그림자 사나이 /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 화선지 속에 감춘 것 / 그날의 신부는

3부 말하라, 이 여자는 누구인가

불행한 만남 / 해빙 / 두려운 날들 / 사라지는 자와 태어나는 자 / 정혜 혹은 마사에 / 악몽 / 살아야 하는 이유 / 흔들리는 시간들 / 곁에 아무도 없다

4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요코와 사끼코 / 꼭 한 번은 마주쳐야 했던 / 탈출할 수 있을까 / 해향에 얽힌 마음 / 마지막 시도

에필로그_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도 나는 조선의 황녀였다.


​줄거리 요약

1. 이름 없는 황녀

고종은 고개를 들어

경운궁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 조선 왕가의

마지막 핏줄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그 어린 것의 운명이 가여웠다.

망국의 옹주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 아니었다.

옹주가 태어났을 때, 고종은 이미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고 순종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준 신세였습니다. 명성황후는 시해되었고, 고종은 아내를, 그리고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슬픔에 하루하루를 이어갔습니다.

고종은,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고명딸(아들 없는 집의 외딸)인 옹주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는 데라우치 총독을 연회에 초대하고, 옹주를 소개합니다.

어떠하오? 우리 옹주가?

고종은 어린 옹주가 춤추는 것을 보여주고, 옹주가 총독에게 인사를 올리도록 합니다. 총독은 “옹주님께서 참 의젓하고 영민하신 듯합니다.”라고 칭찬합니다.

그날 데라우치는 그의 집무실로 돌아가면서 생각합니다.

‘내가 당했구나. 고관들 앞에서 옹주를 인정하고 말았어. 조만간 황적에 올려달라는 상신이 들어오면 회피할 명분이 없겠구나.

천하의 데라우치가 늙고 힘없는 퇴황제에게 발목을 잡히다니.’


<실제 역사>

일제는 덕혜옹주를 황적에 올리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아마 대한제국 황실의 대를 끊으려고 그랬던 것이겠죠.)

이에 고종이 직접 당시 일본의 총독이었던 데라우치에게 덕수궁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덕혜옹주를 보여주며 “이 아이가 내 딸이다”라고 소개해 황적에 올렸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2. 다가오는 불행

옹주는 고종 황제의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갑니다. 그러나 그녀가 8살 때, 고종황제는 승하하십니다.

“꿈이 이상해. 캄캄한 밤에 폭풍이 휘몰아쳐서 모든 게 다 사라져버렸어.”​옹주가 꿈을 떠올리며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모는 몸을 떨었다. 답을 구하듯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는 옹주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금 뭐라 하셨습니까?”“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렸다고.”​그 말에 유모가 기어코 몸을 흐트러뜨렸다.“마마, 황제께서 승하하셨사옵니다. 흐흑…… 마마…… 마마!”

옹주는 고종이 죽기 전날 밤까지도 그와 함께 늦게까지 있었습니다. 전날 밤까지도 멀쩡하던 아버지의 죽음 소식에 그녀는 고종의 독살을 확신합니다.

이건 독살이야.

고종

유모는 옹주가 고종의 독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말립니다. 그녀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했습니다. 옹주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쉬쉬하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녀는 고종 독살의 진상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고 싶었습니다.

“마마, 강풍이 불면 고개를 숙여야 하옵니다.”그 말에 옹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나가! 나가버려!”


옹주는 고종의 귀신이 와서 ‘아기야, 내 죽음을 기억해라, 내 원한을 풀어다오‘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궁에는 옹주가 미쳐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옹주는, 불행했습니다. 그녀는 황족으로서 ‘덕혜’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지만, 황족은 모두 일본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기에, 강제로 일본으로 가야 했습니다.

“나는 덕혜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다. 그것도 얼마 전에야. 그런데 이름을 얻은 대가로 일본에 가야 하는 것 같구나.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구나. 이름을 얻으면서 정식으로 황족이 됐는데 이름이 없던 때가 더 나았던 모양이다. 이름을 얻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구나…….”

일본인들은, 교육을 받으러 온 옹주를 차별합니다. 그들은 옹주에게 ‘조센징’이라며, 너희 나라로 가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덕혜옹주는 조용히 지내며, 마음속으로 복수의 칼을 갑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누구 하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독살을 의심했기에, 물 한 컵조차 쉬이 받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보온병에 끓는 물을 담아와서 그 물만을 마셨습니다. 이를 측은히 여긴 한 일본 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왜 여기 있나요?

내가 당신이라면 조선에 가서

독립운동을 했을 거예요.

덕혜옹주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그렇지 않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날마다 조국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습니다.


<실제 역사>

덕혜옹주는 학교 식수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 팔팔 끓인 물을 보온병에 담아 갔다. 왜 보온병을 들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식수에 독이 있을까 봐 마시지 않고 있습니다. 전 오빠(순종)처럼 독을 먹다 죽기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 일본 학습원 동료의 말

덕혜옹주는 일본 학교에서 나름 극존칭의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 역시 일본의 황족과 화족들이 다니는 좋은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택이 아닌 기숙사에서 공부해야 했고, 일본인들 사이에 휩싸여 마음 의지할 때가 없이 외로웠다고 전해집니다.


3. 강제로 맺어진 인연

일본 유학 중, 덕혜옹주는 자신의 어머니인 양 귀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후 덕혜 옹주는 신경 쇠약에 시달립니다. 그녀는 자주 기절하고, 깨어있을 때는 눈물을 흐느낍니다.

일본은 양 귀인이 귀족 출신이 아니라는 점을 이유로, 덕혜옹주가 상복을 입고 3년 동안 어머님의 죽음을 추모하지 못하게 합니다. (조선 왕실의 전통에 따르면 옹주는 마땅히 3년 복상을 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덕혜옹주는 힘이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일본은 덕혜옹주를 강제로 결혼시키려 합니다. 그녀의 신랑으로 내정된 자는 대마도 번주의 아들인 소 다케유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덕혜옹주는 이 결혼을 (당연하게도) 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조선인들 역시 이 결혼에 분개합니다.

고종은 생전에 이미 황실 시종 김황진의 조카인 김장한과 옹주를 약혼시킨 상태였습니다. 일본은 고종이 죽은 후 이 약혼을 무효화시켰지만, 김장한은 자신이 약혼한 그날부터 덕혜옹주만을 위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구국청년단’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덕혜옹주가 결혼하기 전 그녀를 구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덕혜옹주의 결혼식 날 총칼을 들고 주위를 삼엄하게 경비했고, 침입자에게 가차 없이 총을 쏩니다. 총성이 울리는 한가운데, 덕혜옹주는 소 다케유키라는 자와 결혼해야 했습니다.

1931년 5월 8일. 덕혜는 대마도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의 아내가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하는 전문이 그날 오후 2시쯤 창덕궁 낙선재에 도착했다.


<실제 역사>

가을 학기가 시작됐으나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종일 누워 있고 먹지도 않고 때로 밤에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가 뒷문으로 해서 아카사카미츠케 방면으로 걸어가고 하는 일도 있었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어 정신과 진료를 받게 했다.

의사는 ‘조발성치매증(정신분열증)이라고 했다.

– 이방자(마사코, 덕혜옹주의 이복 오빠인 영친왕의 부인) 여사의 말

덕혜옹주는 어머니인 양 귀인이 죽은 후 신경쇠약과 조현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그녀를 귀국시키지 않고,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덕혜 옹주를 소 다케유키 백작과 결혼시켜버립니다.

김장한이 덕혜옹주와 약혼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덕혜옹주의 결혼식 날 그녀를 구하러 오지는 않았습니다.


4. 불행한 만남

소 다케유키는 덕혜 옹주와 나름 잘 지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덕혜 옹주를 위해 조선식 식사를 준비하고, 덕혜 옹주를 위한 시를 써주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말해줍니다.

옹주는 다케유키에 대한 경계를 조금씩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그녀는 딸을 낳습니다. 그녀는 딸의 이름을 정혜로 짓습니다. (일본식 이름은 마사에입니다.)


덕혜옹주는 정혜에게 조선에 대해 알려주고, 언젠가 한번 같이 조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자라고, 일본식 세뇌교육을 계속 받은 정혜는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합니다.

“나를 정혜라고 부르지 말아요. 나는 마사에, 소 마사에란 말이에요!”

정혜는 학급 친구들이 자기를 조센징이라고 놀린다며, 일본인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이를 보며 덕혜 옹주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덕혜 옹주는 점점 미쳐갑니다. 남편인 다케유키는 일본 제국의 병사로 전쟁에 참여합니다. (당시는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덕혜는 홀로 집안에 있으면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킬킬댑니다. 하녀들은 덕혜 옹주가 완전히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일본은 세계대전에서 패망합니다. 덕혜 옹주는 내심 기뻤지만 집안에서 그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딸은 이미 뼛속까지 일본인이었고,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던 날 정혜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했습니다.


<실제 역사>

내 아내는 말하지 않는 아내,

먹지도 않고 배설도 안 하는 아내.

밥도 짓지 않고 빨래도 안 하지만

거역할 줄 모르는 마음이 착한 아내

소 다케유키, 환상 속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노래 中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의 관계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를 신경 써줬고, 덕혜 옹주를 위해 긴 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딸 정혜를 출산한 후 덕혜옹주의 정신병 증세는 점점 심해졌고, 일제 패망 이후 소 다케유키는 결국 그녀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킵니다. 1955년, 소 다케유키와 덕혜 옹주는 이혼합니다.

+

덕혜 옹주의 딸 정혜(마사에)는 어머니와 사이가 소원했으며, 1955년 일본인과 결혼하여 분가하였습니다. 1956년, 정혜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었으며, 이후 그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5.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일제 패망 후 다케유키는 덕혜 옹주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덕혜 옹주는 병원에서 나날로 미쳐갑니다. 그러나 망국의 공주였던 그녀를 잊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약혼자였던 장한이었습니다.

장한은 병원에서 덕혜옹주를 구출시킵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조선 땅에 들어갑니다.

마마, 소인을 죽여 주시옵소서.

덕혜 옹주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노인이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합니다. 덕혜 옹주의 어린 시절 유모였습니다. 유모는 떨리는 손으로 덕혜 옹주를 부축합니다. 쇠약해진 옹주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유모, 내 아버지는 어찌 되셨느냐?”“돌아가셨나이다.”유모가 울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덕혜가 슬픈 얼굴로 또다시 물었다.“어머니는 어찌 되셨느냐?”“돌아가셨나이다, 마마. 그리운 이들은 모두 사라졌나이다.”대답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모든 일이 봄날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구나. 모든 것은 사라짐으로써 덧없나니.”

기나긴 세월이 흘러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많은 것들이 변한 후였습니다. 덕혜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소식에 대해 묻습니다.

덕혜 옹주는 자신이 조선의 옹주로서 부족한 점이 있었는지, 위엄을 잃은 적이 있었는지 묻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는 유모의 말에 덕혜 옹주는 ‘나의 마지막 소망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라고 말하며 눈을 감습니다.


<실제 역사>

광복이 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왕정복고를 두려워하여 그녀의 귀국을 꺼려 합니다. 덕혜 옹주는 김장한의 형인 기자 김을한의 노력으로 1962년이 되어서야 3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1972년 덕혜옹주 회갑잔치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

돌아온 덕혜옹주는 주변 사람들을 거의 알아보지 못했지만, 창덕궁에 돌아오자 옛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이후 죽을 때까지 덕혜옹주는 간간이 정신을 차렸을 뿐, 끝내 온전한 정신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1989년 4월 21일, 덕혜 옹주는 76세의 나이에 창덕궁에서 사망하였습니다.


​한줄 서평

국권을 빼앗긴 민족의 서러움

단지 망국의 공주였다는 이유로, 인생에서 자유를 빼앗기고 매번 독살을 조심하며 살아야 했던 덕혜 옹주.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보고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과거 아팠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겨야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입니다.


  • <덕혜옹주> 영화에 관심 있으신 분
  • 역사 소설을 찾으시는 분
  • 덕혜옹주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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