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도서 추천 리뷰 : BE HAPPY, 노르웨이 라면왕 미스터 리 이야기

제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게 제일이고,

또 무엇을 시작하더라도

처음부터 큰 걸 바라지는 말고

조그마한 것을 바라보고서

거기에서 성장시켜 가려는 자세.

그게 제일 중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라면왕 이철호

여러분 혹시 이렇게 생긴 라면 본 적 있으신가요?

봉지에 푸근한 아저씨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뭔가 외국 라면 같으면서도, 한국어로 ‘닭고기 맛’이라고

적힌 게 신기한 이 라면이요.

신기하게도 여러분께서 보고 계신 이 라면은 노르웨이의 국민 라면으로 한때 시장 점유율을 95%까지 차지했던 상품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도 인터넷에 ‘미스터 리 라면’이라고 치면 해외 배송으로 살 수 있어요!)

그리고 더욱 신기한 건 이 라면 봉지에 그려져 있는 아저씨가 Mr. lee라고 불리는 한국인이라는 것인데요. 그의 한국인 이름은 이철호. 전쟁난민 출신에서 노르웨이 국민의 사랑을 받은 라면왕까지 등극한 그의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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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HAPPY 작가 소개

이철호(Mr. Lee) & 이리나

BE HAPPY 작가 소개

위의 라면 봉지에 있는 이미지와 몹시 닮으셨죠? 이 책은 이철호 님의 셋째 딸인 이리나 양이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여러 기사를 답습하며 적은 책입니다. ​


BE HAPPY 목차 소개

  1. 철호에서 아치까지
  2. 노르웨이에서 터를 닦기까지
  3. 새로운 사업의 준비 단계
  4. 라면왕, 미스터 리

(제가 전자책으로 독서해서 사진이 없어요..)

이철호 님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라면왕 미스터 리로 등극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상세히 적혀 있어요~​


간단 줄거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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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호에서 아치까지

어린 시절의 이철호

라면왕 이철호, 그는 1937년 여섯 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가 14살이었을 때, 한국에 6.25 전쟁이 일어납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가족 모두가 피난을 가던 중 철로가 폭격되고,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홀로 남은 철호는 구두닦이로 일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일하고,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던 어느 날, 그는 임진강을 헤엄쳐 건너려다 큰 물살에 휩쓸립니다.

다행히도 당시 임진강 주변을 순찰했던 미군이 의식을 잃은 철호를 발견하고, 그를 막사로 데려가서 돌봐줍니다. 그때부터 이철호 씨는 미군의 심부름꾼인 ‘하우스보이’ 역할을 하며, 구두 닦고, 청소해 주고, 빨래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 이철호 씨의 새 영어 이름이 생기는데요. 바로 ‘아치’였습니다. 만화 ‘아치 볼’을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생기게 된 별명이었습니다.​

제가 참 일을 잘한다고

‘넘버원 하우스보이’라고 불렸어요.

일 열심히 잘한다고

미군들이 저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이철호

미군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북한군이 미군 진영을 공격합니다. 북한군은 미군 텐트 안으로 수십 개의 수류탄을 던져 넣었고, 이철호 씨는 큰 부상을 입고 맙니다.

당시 이철호 씨의 부상은 너무나도 심해서, 한국에서는 치료를 지속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미군들은 어떻게든 그를 치료하고 싶었지만,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세금으로 미국 시민이 아닌 사람을 치료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철호 씨와 정이 든 미군들이 절망하고 있던 그때, 노르웨이로부터 소년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식이 전해옵니다. 그렇게 1954년 4월 4일. 17세의 소년 이철호는 노르웨이에 건너간 첫 번째 한국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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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도착 당시 이철호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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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르웨이에서 터를 닦기까지

노르웨이에서 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몸을 회복한 소년은 이제 밥을 벌어먹고 살기 위해 일을 시작합니다. 돈이 필요했기에 아무 데고 닥치는 대로 들어가 자신을 고용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무실 심부름꾼, 동물 병원 잡역부, 연극 무대 단역배우, 재래식 화장실 청소부.. 그럼에도 돈이 부족해 영양실조를 진단받을 만큼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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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던 소년은, 한국에 있을 때 구두닦이 일을 했던 경험을 되살려, 노르웨이 시민들의 구두를 닦아보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노르웨이에서는 구두닦이조차 면허증이 있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면허증을 받으려면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이 필요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1954년 가을,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 통신 학교에서 노르웨이어 과정을 이수하고, 동시에 에우베르츠 학교에서 고등학교 준비과정을 개인 지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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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 교육을 마친 후 이철호 씨는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항상 먹고사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원 없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조리사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관광호텔에서 조리 견습생으로 일합니다. 처음 이철호 씨에게 주어진 임무는 설거지였습니다.

여기서 이철호 씨의 강점이 드러납니다. 그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설거짓거리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정성을 쏟아 그릇을 닦습니다. 호텔에서는 그에게 긍정적인 추천서를 적어 주고, 그는 프랑스로 가서 요리 공부를 계속할 계획을 세웁니다.​

접시 하나, 스푼 하나라도

반듯하고 가지런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까지 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윗사람 눈에도

좋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프랑스에 가서도 찬밥 신세는 여전합니다. 이번에 이철호 씨에게 주어진 일은 감자 깎기였습니다. 이철호 씨는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최선을 다합니다. 다른 견습생들은 감자를 그저 물에 담가놓기만 하였지만, 이철호 씨는 메뉴판에 따라 감자를 올리브처럼 깎기도, 동그랗게 깎기도, 사각형으로 깎기도 합니다.

그의 정성이 높이 평가되어, 이철호 씨는 6개월 만에 감자 깎는 일을 그만두고, 보조 요리사로 승진합니다.

(이때 3년 동안 감자 깎는 일만 했던 스페인 견습생은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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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로운 사업의 준비 단계

요리사가 된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의 ‘묄하우센’이라는 카페의 대표직으로 스카우트되어 일합니다. 그러나 그는 묄하우센 관리 이외에도 창업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묄하우센 운영과 더불어 ‘리 무역(후에 상호는 코리아 엑스포로 변경됨)’이라는 개인 무역사업을 시작합니다. 이철호 씨는 기회만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인삼 수입을 시작으로, 요리사 모자, 일회용 장갑, 양말 등도 수입해 보고, 여러 사업을 시도했으나 잘 흘러가지 않았던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와 별개로 이철호 씨는 묄하우센 레스토랑 경영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입니다. 그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1개였던 점포를 20년 후 15개로 늘렸으며 본인 특유의 광고 아이디어와 경영 방식으로 ‘미스터 묄하우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1989년 가을, 묄하우센 그룹을 한 덴마크 회사가 인수합니다. 이는 이철호 씨가 묄하우센 운영을 그만두는 계기가 되고,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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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면왕 미스터 리

노르웨이 시장을 장악할 만한 아이템을 떠올리다 문득 이철호 씨는 라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3분 만에 배를 채울 수 있는 간편함, 그리고 중독성 있는 맛은 노르웨이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으리라고 예상한 것입니다.

이철호 씨는 라면박스를 들고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며 상급자들에게 라면 공급 계약을 맺으려 합니다.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라면을 시식하러 들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라면을 휴지통에 버려버리기도 합니다.​

라면박스를 들고 슈퍼마켓 영업을

나갈 때마다 문전 박대를 당했다.

문득 어렸을 적 아버님 말씀이 떠올랐다.

“한 번 찍어서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정말 욕심이 나면 넘어갈 때까지 찍어야 한다.”

아무리 문전 박대를 해도 나는 굳건히 찾아가고

또 찾아갔다.

그러나 이철호 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라면을 팔기 시작합니다. 먼저는 구멍가게나 작은 식당 등을 목표로 라면 공급 계약을 맺어 입소문을 퍼뜨립니다. 그 후 큰 회사에 차례대로 연락하며 점차 라면의 시장 점유율을 넓혀갑니다.​

매출이 계속 증가하자 이번에는 홍보 부분을 공략합니다. 유명 텔레비전 쇼의 기념품으로 1년 치 라면을 제공해 보기도 하고, 직접 광고를 찍으며 한국에서 온 이민자 Mr. lee라는 독특한 이미지로 브랜드화도 시킵니다.

라면의 맛 역시 노르웨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려 노력합니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스를 먼저 알아본 다음 매운맛을 빼고 기름진 맛을 더한 라면을 출시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Mr. lee 라면을 노르웨이 시장 점유율의 95%를 차지하기까지 합니다. 소비자들은 Mr. lee에 대한 애착을 표시했으며 그는 유명 인사로 떠오르게 됩니다.​

나이가 들고 라면 사업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이철호 씨의 도전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번에 그는 노르웨이와 한국 사이의 관계를 증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을 구해준 나라 노르웨이와 조국인 한국 사이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2004년 10월 4일.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 국왕으로부터 <위대한 노르웨이인 훈장>을 수상 받습니다. 난민으로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온 그가 한국과 노르웨이 사이의 징검다리가 된 것입니다.


한 줄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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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모든 순간

기회는 있다.

낯선 나라, 부족한 자금, 계속되는 거절.

이철호 씨가 아마 인생을 살아가던 도중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법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를 보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고 기회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길은 항상 열려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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