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책 리뷰 독후감 추천
오늘 가져온 책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입니다. 아침에 올린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환자와 그 주변인의 입장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책이었다면, 이 책에는 죽음을 앞둔 환자를 상담하는 의사의 입장이 담겨 있습니다.
책의 저자인 김범석 선생님은 서올대학교 암 병원 종양내과의 전문의십니다. 그는 항암치료를 통해 암 환자의 남은 삶이 의미 있게 연장되도록 암 환자를 돕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과연 선생님께서는 수많은 암 환자를 만나시면서 죽음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을까요?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책 리뷰해 보겠습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작가 소개
김범석
서울대학교 암 병원 종양내과 전문의이십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내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친 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전임의 과정을 마치셨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현재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상교수로 근무하고 있으십니다.
작가님의 저서로는 <진료실에서 못다 한 항암치료 이야기>, <천국의 하모니카>, <항암치료란 무엇인가>, <암 나는 나 너는 너>, <암 환자의 슬기로운 병원생활>이 있습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목차 소개
이야기를 시작하며
1부. 예정된 죽음 앞에서
2부.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3부. 의사라는 업
4부. 생사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마치며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책 속의 한줄
1. 너무 열심히 산 자의 분노
선생님,
아까 환자분 눈빛이 장난이 아니던데요.
선생님을 진짜 잡아먹을 것 같았어요.
그는, 소위 ‘깡촌’으로 불리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여덟 남매 중 맏이였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장남이었고, 가족들은 그에게 아버지를 따라 농사지을 것을 권했지만, 그는 대학에 가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는 주경야독 끝에 기어이 대학에 합격했고,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가며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취직을 해서 회사 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결국 올라간 외국계 기업 임원 자리.. 불가능을 가능을 바꾸는 일의 연속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50대 중반의 한창인 나이에 신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암은 뼈와 림프절까지 전이되었고, 그는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안 되는 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항암치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내성이 생기면 다른 항암제를 시도해 보았고, 3년 가까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계속 다녔습니다. 출장까지 다니며 평소보다 두 배로 일했습니다.
어쩌면 암 투병을 하면서도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 그것이 그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남자의 병은 심각해졌지만 그는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계속해서 치료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3년 내내 항암치료를 하면서 그는 내내 화가 많이 나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너무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분노.
분노가 오기가 되고 오기가 원망이 되기도 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을 것이다.
(…)
그에게 삶은 열심히 싸워야만 하는 투쟁의 장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죽기 살기로 살려고만 했던 건 아니었을까?
만약 사는 동안 적당히 자신의 욕망과 타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더라면,
너무 앞만 보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달렸더라면,
그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결코 살가운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까칠한 사람이어서 간호사들에게도 예민하게 굴어, 주변 사람들은 그를 돕기를 꺼려 했습니다.
몇 달 후, 작가님은 호스피스 실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그가 가족들의 외면 속에 쓸쓸히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내가 죽은 뒤에 혹시라도 그를 다시 만난다면 꼭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까?”
이전에 가족을 병으로 떠나보낸 지인에게 ‘죽음을 맞이하기 전의 사람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지인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인의 가족은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오랜 치료를 받았고, 심지어 생의 마지막에는 호스피스에 들어갈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살아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두지 않았기에, 죽지 전 꼭 해야 할 일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불가능함을 받아들이는 일 역시 용기이구나.
우리는 ‘끝까지 도전하는 사람이 멋있다’라는 관념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불가능해도, 계속 시도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미덕에 휩싸여,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지는 않을까.. 조심해야겠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야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까.
2. 오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합니다.
작가님께서는 6년 전에 B를 만나셨습니다. 당시 B는 갓 군대를 제대한 청년이었고, 고환에 덩어리가 만져져서 병원을 찾아왔었습니다. 몇 가지 진단 후 그는 고환암 진단을 받았고, 고환 절제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B는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항암치료는 독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다 빠졌고, 항암주사를 맞는 내내 그는 토악질을 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고통을 버텨내는 사이 예정된 네 번의 항암치료가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시행한 PET/CT 검사에서는 폐 전이가 모두 사라져 있었습니다.
B의 암이 완치된 것입니다.
그러나 암이 사라졌다는 기쁨도 잠시, 암을 극복한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청년실업자’가 되었습니다.
B가 과거 암을 앓은 이력이 있기에 그는 일반 회사에 취직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B는 9급 공무원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시험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와 만난 젊은 환자들이 암을 극복한 뒤에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친구도 있고, 눈을 돌려 해외에 있는 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다.
(…)
그러나 가장 많은 경우 여전히 백수이거나 혹은 취준생으로 지내고 있다. 그들 가까이에서 지켜본 현실은 훨씬 비정했다. 취업을 위한 소견서에 암은 이제 깨끗이 완치가 되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써 주지만, 그 다음 외래에 찾아와 다시 소견서를 부탁하는 걸 보면 취직의 문턱은 여전히 높은 것 같았다.
작가님께서는 B가 외래에 올 때마다 그가 안쓰러웠습니다. 생계를 위해 취직하는 일조차 암 환자였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 그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사회가 젊은 암 생존자에게
최소한의 꿈과 희망도
제시해 줄 수 없는 걸까?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일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들은 병에 걸린 동안 ‘환자 역할’을 부여받게 됩니다. 환자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건강만을 신경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병에 낫고 난 후, 그 모든 방패들은 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병원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은 (대부분의 경우) 허송세월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우울증 극복 환자의 자기 고백 영상을 들으며,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의 앞에는 꽃길이 펼쳐지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만 회복되었을 뿐, 그들은 다시 자신에게 우울증을 유발한 가시밭길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상 모든 환자들이 이런 현상을 겪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몸만 회복되었을 뿐, 회복된 환자들은 다시 가시밭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병마와 싸웠던 모든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차별받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힘겹게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차례 더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사회의 비정함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암 생존자가 160만 명이 넘어섰다.
이중 상당수는 젊은이들이다.
3. 이기심과 이타심
오십 대 후반의 폐암 말기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3년 전 한 번 폐암 치료를 받았지만, 항암제 내성이 발생하면서 암 덩어리는 다시 커졌고, 상태가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환자의 딸은 본업을 그만두고 아버지 간병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간병을 전담할 수 있는 사람은 딸뿐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딸의 얼굴이 많이 지쳐 보인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딸의 상태도 함께 나빠져가는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훗날 그녀는 자기 자신이 이기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보다 본인의 일을 우선했던 것, 아버지를 제때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자책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 딸은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이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좀 더 챙겼더라면, 조금 더 이기적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부모 자식의 관계 이전에 그녀가 사람이기 때문이고, 간병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작가님이 보기에 그 딸은 이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딸이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작가님은 종양내과 의사이지만 가끔씩은 휴가를 다녀오십니다. 몇몇 보호자들은 어떻게 아픈 사람을 놔두고 휴가를 갈 수 있느냐 화를 냈습니다. 그 말이 작가님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은 휴가를 다녀오셨습니다. 잠을 충분히 자고, 가벼운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 후, 주변 사람들이 작가님에게 ‘얼굴이 좋아 보인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님 스스로도 자신에게서 마음의 여유를 느꼈고, 집중력, 판단력, 환자들과의 관계, 모든 것들이 나아진 사실을 느꼈습니다.
누군가를 돌볼 때에는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어야 이타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기심과 이타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작가님은 남을 돌보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습니다.
작가님의 말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희생하는 것만을 이타적이라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에너지는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 남에게 에너지를 주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의 에너지 수준을 높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저 자신을 가꾸어야겠습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한 줄 서평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접할수록 좋은 것 같다.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다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많은 일화들이 들어가 있어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이런 분야는 정말로, 마음이 많이 아프고, 불편한 감정이 들 수 있어도 계속 의식적으로 접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인이 환자가 될 때,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내가 죽기 전에 덜 후회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분들에게 책, 도서 추천 !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
삶의 철학을 정립하고 싶으신 분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도서, 책 리뷰 및 독후감을 마치겠습니다. 다른 책 리뷰, 후기도 같이 확인 해보세요!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 및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