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가져온 책은 신형철 작가님의 입니다.
이 책은 비유하자면 ‘꼭꼭 씹어먹기 좋은’ 책입니다.
<인생의 역사>에는 신형철 저자님께서 인상깊게 읽으셨던 시들이 5부에 걸쳐 적혀 있어요. 이와 더불어 작가님께서 각각의 시를 읽고 느끼셨던 점이나 시의 시대적 배경 등이 소개되어 있어요. 시를 읽으면 ‘에이, 이런 시가 왜 좋은 거지?’하는 시들도 평가를 보면 ‘아, 이런 의미가 있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내용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들을 여러분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소개해보겠습니다.
인생의 역사 작가 소개

신형철

대한민국의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십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신 작가님께서는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며 비교문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작가님께서는 2005년 <문학동네> 봄호에 평론 <당신의 X, 그것은 에티카>를 발표하면서 평단에 등장하셨습니다. 이후 2007년부터 2019년까지 계간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셨습니다.
신형철 작가님께서 남긴 책으로는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인생의 역사> 등이 있습니다.
인생의 역사 목차 살펴보기







프롤로그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1부 고통의 각
가장 오래된 인생의 낯익음
-「공무도하가」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
-『욥기』
언제나 진실한 것은 오직 고통뿐
-에밀리 디킨슨의 시 두 편
왜 모든 강간은 두 번 일어날 수 있는가
-에이드리언 리치, 「강간」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생
-최승자, 「20년 후에, 지(芝)에게」
2부 사랑의 면
그대가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73」
연인들에게 묻는다, 우리의 존재를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무정한 신과 사랑의 발명
-이영광, 「사랑의 발명」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보내는 사랑
-나희덕, 「허공 한줌」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메리 올리버, 「기러기」
3부 죽음의 점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김시습, 「나는 누구인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
-W. H. 오든, 「장례식 블루스」
외로움이 환해지는 순간이 있다
-황동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
-월리스 스티븐스, 「아이스크림의 황제」
운명이여, 안녕
-한강, 「서시」
4부 역사의 선
그런 애국심 말고 다른 것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 두 편
윤동주는 ‘최후의 나’를 향해 갔다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그러나 문학은 기적적이다
-황지우, 「나는 너다 44」
광화문에서 밥 딜런이 부릅니다
-밥 딜런, 「시대는 변하고 있다」
아름다운 석양의 대통령을 위하여
-신동엽, 「산문시 1」
5부 인생의 원
하나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임의의 다른 절망
-이성복, 「생에 대한 각서」
단 한 번의 만남이 남긴 것
-레이먼드 카버, 「발사체」
절제여, 나의 아들, 나의 영감(靈感)이여
-김수영, 「봄밤」
이 나날들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필립 라킨, 「나날들」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부록 반복의 묘
오타쿠의 덕
-어느 ‘윤상 덕후’의 고백
누구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
-코로나 시대의 사랑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
실패한 사랑의 역사를 헤치고
-최승자의 90년대를 생각하며
오디세우스와 아브라함 사이에서
-황동규의 최근 시
에필로그 돌봄, 조금 먼저 사는 일에 대하여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인생의 역사 : 책 속의 한줄
1.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베르톨르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독일의 시인인 베르톨르 브레히트가 그의 연인인 루트 베를라우에게 쓴 시입니다. 덴마크에서 함께 살던 둘은, 1937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제2회 문화수호를 위한 국제작가회의’에 동반 참석하게 되는데, 이 때 진행중이던 회의 장소가 내전중인 스페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베를라우는 용감하게 스페인으로 떠났지만, 폭탄을 싫어했던 브레히트는 덴마크로 돌아왔습니다. 브레히트는 자신의 연인이 스페인의 내전에 참석하여 정치적 경험을 쌓기를 바랐습니다. 베를라우는 스페인에 오래 머무르며, 전선의 전사들을 만나고 대규모의 회의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베를라우가 브레히트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쓰자, 브레히트는, 베를라우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적어줍니다.

루트 베를라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나’가 시를 쓴 브레히트가 아닌, 베를라우를 상징한다는 점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브레히트가
베를라우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을 사랑해요.’가 아닌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말은 연인 사이에서 조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 내가 당신을 위해 뭘 해야 할까요?
당신이 필요해요
= 당신이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나요?
둘 사이에는 위와 같은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여기까지 시를 해석해보면 기묘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시는 단순한 사랑 고백이 아닌 듯합니다. 시의 제목인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까지 고려하면, 마치 브레히트가 베를라우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베를라우, 이 시를 아침저녁으로 읽으시오.
그리고 잊지 마시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브레히트가 보낸 이 시를 읽고, 베를라우는 아마 자신이 할 일이 뭔지를 재확인했을 것입니다. 베를라우는 정신을 차려야 했고, 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브레히트를 위해서였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을 때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가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지시나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시는 사랑고백보다는 일종의 강요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신형철 작가님께서는 이 시를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으로 치환시키셨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시의 표현 중 ‘두려워하면서‘라는 문구에 초점을 맞춰 이 작품을 재해석하셨습니다.

그러니, 아, 내 사랑이여, 그대를 잘 돌보시길.
내가 나 위해서 아니라 그대 위해서 그러하듯이
세심한 유모가 자기 아이 다칠까 노심초사하듯
나 역시 가슴에 그대 품고 소중히 간직하려니
– 소네트22 부분, <소네트집>
브레히트 시의 화자가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듯이, 소네트집의 화자는 ‘노심초사하듯’ 살아갑니다. 신형철 작가님은 이 두려워하고,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조심’이라는 이름을 붙이십니다.

| ‘조操’라는 한자는 세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1) 왼편에는 손扌이 있고2) 오른편 아래에는 나무 木,3) 그 위에는 세 개의 입口이 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 ‘손으로 나무 위에 있는 새를 잡는’ 모양을 따른 글자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거기에 ‘심心’을 더한 ‘조심’의 뜻은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이 될 것이다. |
사랑의 조심은 사랑하는 ‘너’에 대한 조심입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손아귀에 힘을 주라고, 이제부터는 그 무엇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아이를 꽉 쥘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손으로 새를 쥐듯이, 놓치지 않을 만큼만 힘을 줘야 할 것입니다.
아들을 위해 아빠는 아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새처럼 다뤄야 합니다. 새를 손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는 일이면서, 내 손으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이제 네 이야기를 너에게 할게. 그러니까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경고했다는 이야기. 조심하라고, 네가 나를 필요하다 느끼는 마지막날까지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게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니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않을게. |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상대가 필요한 사람’과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 사이 관계는 부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한 사랑은, 너무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가 다른 관점으로 해석했을 때 감동적이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2.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보내는 사랑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속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 허공 한줌, 나희덕

이것은 두 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죽음
엄마가 잠이 든 사이, 아기는 난간에 올라갔습니다. 엄마는 아기를 보고 깜짝 놀라, 그를 잡으려 하지만, 엄마 손에 남은 것은 허공 한 줌이었습니다.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고통스러운 결과를 앞에 두고 단 1초도 견디지 못해 맞이하는 죽음. 엄마는 이렇게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합니다.
두 번째 죽음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떨어졌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아기를 안고 달립니다. 엄마는 이미 죽었지만, 아기를 살려야 하므로 마음놓고 죽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무사했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엄마는 그제야 마음놓고,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합니다.
나희덕 시인은 아기에 대한 엄마의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놓은 후, 자신만의 감상평을 남겨 놓고 싶었던 듯합니다. 그녀는 짧은 해석을 더한 2연을 남겼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속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엄마처럼 시인도 제 손 안의 허공을 보는데, 그가 하는 것은 뜻밖에도 반성입니다. 그는 허공을 텅 비어있을 때에도 꽉 찬 존재라고 말합니다.
나희덕 시인은, 후에 자신의 시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통해 부각시키고 싶었던
주제는 모성 자체가 아니라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 관해서였다.
시인은, 엄마의 죽음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좌절일 수도 있지만, 일종의 움켜쥠의 결과라고도 말합니다. 엄마의 죽음의 이유는, 제 자식이 난간 위에 있을 때 이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합니다.

| 부모가 언제나 아이를 받아낼 순 없으리라. 더 나아가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 제 몫으로 주어진 굴러떨어짐을 감당함으로써만 아이가 살아날/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는 자주 허공을 움켜쥐며 자책할 것이다. 그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
나희덕 시인이 이 시를 통해 ‘숭고한 사랑인 듯 보이는 것들이 집착일 수 있다. 이는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다만 그는 지극한 사랑 속에서 ‘움켜쥠’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성숙한 거리를 두는 일의 깊이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움켜쥐는 사랑이 아닌 부드럽게 내려놓는 사랑을 하라고, 시인은 <허공 한 줌>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시가 아름답다.
아무런 배경 정보 없이, 읽는 사람이 원하는대로 해석하는 시도 아름답지만, 이런 식으로 배경설명을 들으며, 시인의 해석을 들으며, 그리고 신형철 작가님의 평을 곱씹으며 시를 읽으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시를 통해 이렇게 많은 것들 깨달을 수 있었는데, 여태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간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인생의 역사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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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통해 인생 시를 찾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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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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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철 작가님의 글에 관심이 있으신 분
- 신형철 작가님의 글에 관심이 있으신 분
제가 추천 하는 다른 도서, 책 걷는 사람 하정우
또는 냉정과 열정 사이 책 줄거리 같이 읽어보세요!
